우리가 우리 때문에 끝나지 않길 바랐었어. 지금은 돌아보면 전부 네 탓으로 돌리고 싶은데, 언젠가 네가 했던 말이 맞아. 둘 다 핸들을 놓은 관계에 시작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거. 그런데 어떻게 끝이 나? 그런데 이 시작도 끝도 없는 것따위가 네 유품이면 어쩌지.
네 이름을 부를 때 생기는 입 안의 공간이 좋아. 여운이 남거든. 그런데 부를 수가 없네, 넌 답장하지 못하니까.
잘못했다고 누군가의 손을 잡고 죄를 빌고 용서를 애원하고 싶어. 형체도 없는 불온한 죄책감이 환청처럼 주위를 맴돌거든. 그렇게 몸을 옹송그려 절규하다 가장 낮은 곳에서 내 것이 아닌 죄까지 전부 내 것이노라 사죄하면, 나를 긍휼히 여긴 타인이 형체도 없는 불온한 온기를 하사할 거라 착각하고.
너와 나의 이름은 하나도 닮지 않았지만 그 편지 안에 있는 너와 나만은 어쩐지 닮아 보였어.
사랑하는 것들이 날 떠나가는 건 괜찮아. 사랑하지 않는 것들이 날 떠나가지 않는 게 문제지.
꽝꽝 얼어버린 호수 위에 덩그러니 서 있더라. 소복이 쌓인 눈가루를 손으로 걷어내니 그 두꺼운 얼음 밑에 일렁이는 잔상을 보고 귀를 대고 물었거든. 너니? 그러니 네 목소리가 들려오더라. 그래서 알았어. 꿈인 거.
눈물 자욱도 전부 그냥 바람에 튼 것뿐이라고 우기고 싶어. 속아 넘어가 줄래?
다시 오란 말 취소할게. 다시는 오지 마.
네가 사 준 구두. 포장 박스를 얇게 싼 종이를 찢기 싫다는 시덥잖은 이유로 개봉을 꽤 오래 미루다 오늘 열어봤거든. 구두가 크더라고. 너 바보야?
삶까지 사랑할 수 없다면 절망을 사랑하는 수밖에 없지.
대뜸 일회용 번호로 전화해서 하는 말이 그거야? 오키나와 가 본 적 없어. 시콰사 사케가 유명하다지? 아마 너희끼리 다녀왔던 그땐 음주를 할 수 없었던 나이였지만. 아, 그래. 솔직히 말하면 아주 안 하진 않았어. 그런데 그게 중요해?
너를 봤거든. 때로는 가끔, 때로는 늘. 넌 세상의 일부를 보지 않길 택했고 언제나 나만 널 응시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되돌아보면 너는 너무 밝아서, 난 부나방처럼 네 뒤의 빛만 눈이 멀 때까지 보았고 그 때 네가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 기억나지 않아. 넌 나를 봤을까. 그림자밖에 기억나질 않아.
모든 게 얼어버리면, 그리고 우리가 다시 빙하기로 돌아가면 모든 게 영원할 것 같았거든. 큰 얼음 조각 하나를 냉동실 바닥에 꺼내 놓았어. 그런데 가끔 냉동실 열 때마다 그건 점점 작아지더라. 나는 냉소가 아무것도 발전시키진 못해도 모든 걸 멈출 수 있을 거라고 착각했던 거야.
행복했기를. 그리고 다시 와. 초원의 바람으로, 흰나비로, 기적으로, 꿈으로, 환희로, 그리고 세계로. 그리고 다시 사랑하기를. 이건 내가 네게 거는 가장 왜곡된 저주야.
냉소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단 것 알아. 하지만 비극이 내게 고통을 선사하기 전에 지레 현실을 직시하면 알게 되는 건 우리란 빛바랜 관념에 종언을 고할 때가 지금이라는 사실 뿐이야. 너와 나. 나와 걔. 걔와 너. 우리.
피곤하지도 않고, 주력이 느껴지지도 않고, 내 머리 꼭대기처럼 쌓인 서류를 보고도 어쩐지 괜찮을 것 같다는 이상한 감각에 둘러싸인 꿈을 꿨어. 언제나처럼 입술에 연초 하나를 물고 밖을 보고 있으면 너희가 지나가더라. 선명하더라, 누구 기억인지.
넌 이길 거야. 네가 이기든, 네 유지를 받든 이들이 이기든. 그건 네가 이룬 승리야.
넌 어쩌면 네 신체의 일부로 나를 느꼈을지도 모르겠어. 그래서 반대로 내가 너를 그리 대하지 않을 때 유감을 느꼈겠지. 난 한 번도 네 일부인 적 없었어. 그리고 네 것인 적도 없었어. 미안하다고 하진 않을게, 네게 더는 거짓말 하지 않기로 했거든.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하나야. 너처럼 네가 전부이고 네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스스로의 범주 안에 가두는 이를, 한없이 가볍다고 치부해버리면 더 나빠질 것은 없거든. 너는 나고, 나는 네가 아니지만. 내가 너를 외면하고 간과하면 너는 나를 마모시키지 못하겠지.
꿈에 그만 나와. 끝나지 않는 복도를 걷고 걷고 걷고 또 걸으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이가 나타나. 너일 리 없는데. 보잘 것 없는 익명성을 지켜주는 그 손바닥이 어쩐지 축축할 것 같아 익숙한 머리칼을 걷고 어깨에 손을 올리면, 보잘 것 없는 예상은 산산이 부서진다. 차마 웃을 수 없었다고. 그렇게 말했다며?
때로는 완벽한 타인을 갈구하게 되는 기분 같은 거, 너는 영영 모르겠지. 세상 그 어떤 거짓도 내게 이렇게 할 수 없을 거야.
너는 겨울 밤 내내 쌓인 햐안 눈처럼 눈이 부시고, 새벽같이 일어난 나는 삿된 흔적 하나 없이 소복히 쌓인 그것을 손으로 마구 헤집어 놓지.
널 다시 보면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거든. 혁명의 낭만은 지난 세기에 끝났다고. 우리는 개척되거나 개척되지도 못할 뿐이라고. 그리고 어느쪽이든 우리가 설 공간이 점점 비좁아질 미래엔 가까워진 네 손을 잡고 더 좁아지면 껴안으며 버티겠다고. 그게 죄악이라도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려 했는데.
손 끝에 둥글게 맺힌 새빨간 구를 본다. 오늘은 또 네게 어떤 핑계를 댈지 고민하며. 때로는 택시비가 없고, 때로는 우산을 잊어버리고, 라디에이터가 망가지고, 집 열쇠를 잃어버린다. 벨을 두 번 울린다. 이건 우리들의 단조로운 암호다. 너는 문을 열고 묻는다. 오늘은? 그냥 그렇게만.
나는 벨을 두 번 울린다. 이건 우리들의 단조로운 암호다. 지옥문을 열고 나온 악마는 이마에 키스한다. 택시비가 없어. 그런 멍청한 변명에도 속아 넘어가주며. 어떤 원망을 주겠지. 절망도, 아픔도, 불행도 오겠지. 그리고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없을 거야. 그게 최선이야, 이 밤은.
옳은 싸움은 없어. 천진하다고 비난해도 좋아. 승패는 승패일 뿐 개인의 생사와 별개의 것이야. 망자에게 승리의 명예를 바친다고 해도 그건 살아남은 이를 위한 행위이지. 패배해도 그들의 삶은 이어져. 그러니 살아. 난 이미 죽은 건 고치지 못하니까.
나는 그 애 대신이 될 수 없다고 당부하고 싶다가도. 이미 깨어져 버린 유리 조각을 들어 너를 할퀴는 일일까 봐 입에 삼킨다. 우리는 이미 깨어져 버린 잔해의 무더기 한 가운데에 그것들을 밟고 서 있는데도 더는 네게 생채기 하나 더 나지 않기를 바라서.
가까이 다가가면 하늘을 헤집으며 훌쩍 날아가 버리는 까마귀들처럼 기억에 접근하면 내 뇌를 폭력적으로 쑤셔 놓는 건 너희.
공항이란 데 정말 이상한 공간이야. 다들 무엇을 기대하고 희망하는 얼굴을 하고 있잖아. 그리고 비행기 궤적만 남긴 채 홀연히 사라지지. 아주 먼 곳으로, 더 나은 곳으로. 이 땅에 가라앉은 모든 번민을 남겨둔 채, 미래로.
타인을 용서할 수 없다면 그 다음은 그를 용서할 수 없는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게 가장 빨라. 효율은, 글쎄.
한 치도 종잡을 수 없던 어떤 가벼움이나 발자국만 남은 어떤 단단한 체념 같은 게 그리워도 첨예한 메스 끝 하나 떨리지 않고 네 머리를 가르던 나의 냉정에 신물이 나는 열대야. 이불을 끌어다 머리 끝까지 덮어도 여직 추울 때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아직도 알지 못하는데.
가끔 살아있는지 궁금해서 콧잔등 밑에 손을 대본다.
그러니 남쪽의 소년들이여, 떠나는 데에 서슴치 마. 너희에겐 이제 모순도 고독도 순리도 없으니 그건 감내할 수 있는 사람이 할게.
죽은 이들의 기억을 업고 살아 가는 것이 살아남은 자의 숙명일 거야. 혼자 살아남은 게 죄라고 생각하진 않아, 그냥 너희들만큼 바보가 아니었던 것뿐이니까.
그때 붙잡았더라도 넌 아마 수긍하지 않았겠지. 이미 네게 삶은 둘 중의 하나만 고를 수 있는 제로섬 게임이 되었고 대의와 비교하면 많은 것이 사소해지니까. 그걸 확인하기 싫었거든. 네게 내가 사소하다는 것, 그리고 내게 네가 사소하지 않다는 것. 전부.
실망이 타인에게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지 마. 실망은 내재한 것에서 발생해. 타인을 이해했다고 착각하고 기대함에서. 그 어떤 이해도, 오해도 없으면 그 무엇도 날 실망시킬 수 없어.
너희들이 남긴 행선지는 확실한데, 그걸 따라가기 싫은 건 어째서일까. 신호등이 바뀌어도 초록등의 잔상만 담고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아. 이제 도시는 이렇게나 투명한데 아무리 속속들이 살펴도 있길 바라는 이는 없거든.
그러니까 사실 네 눈은 그날의 푸르름을 비추고 있는 것 아니냐는 거지. 타인의 고독을 용납하지 않으면서 정작 너는 그날의 갈림길에 혼자 서 있다고. 네 등을 떠밀어 줄 단 하나의 손이 부족해서.
그러니 나는 무엇으로 연명되는가. 사랑 대신 폭력을, 수평 대신 수직을, 오만 대신 편견을, 소망 대신 비관을, 설득 대신 멸시를. 나를 만듦과 동일하게 이편의 파편으로 연명된다.
그러니까 결국 삶을 연명하게 하는 것은 자신 외에 대한 사랑이야. 비슷한 말로 치환해도 좋아. 박애든, 용서든. 타인에 개입해 영향을 미치겠단 것도, 바꾸어 놓겠다는 것도, 전부 지우고 잘라내 버리겠다는 것도, 신뢰하겠단 것도, 어떤 폭력적인 사랑을 행사해도 그것은 사랑에서 시작해. 밑겨?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사랑의 이름 하에 용납하지.
나는 갈망한다. 고통, 상흔, 절망, 비관에서 자유로운 날이 오기를. 아니다. 자유로워지길 갈망하는 날이 오기를 갈망한다.
연결됨과 연결되지 않음 연결되지 않음으로서 연결됨
love and lose and like and lie and light and let you down
실려 오면 치료하고 실려 오면 치료하고 실려 오면 치료하고 실려 오면 열고 뜯고 살피고 채취하고 꿰매고 20XX년 X월 X일 십삼 시 칠분 사망하셨습니다 DOA 지하철역에 출몰한 2급 주령에게 후두부 손상으로 즉사 두뇌 잔해 찾을 수 없음
변을 맞춰 반듯하게 두 번 접은 종이를 남기고 ‘부탁할게, 쇼코.’ 그 한마디로 넌 많은 것을 간단명료하게 정리했지. 아마 너는 나도 그렇게 정리했을 거야. 아― 그냥 종이비행기나 접어 날려버릴까.
몸 하나 건사하기가 이렇게 귀찮아서야. 부질없는 삶 연장하겠다고 흘러가는 대로 살고는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곳은 끝도 없이 몰아치는 절망 안이라, 사실은 물살을 등지고 서 있네.
‘보고 싶다’는 감정 참 이상한 거야. 한 번도 그런 감정을 느낀 적 없는데 사람들은 으레 인사치레로 그런 말들을 하잖아? 보고 싶었다, 보고 싶을 거다. 누군가는 이것만큼 아픈 말도 없다는데 내겐 이것만큼 공허한 말도 없던데.
원하는 게 있다는 건 대단한 거야. 이런 평가는 잘 하지 않는데, 욕구나 지향이 있다는 건 삶에 대한 의지가 남아있을 때나 가능하잖아? 어쩌면 난 평생 못 따라가겠어. 이해하기도 버겁고.
너 그때 여름 싫다고 했잖아. 초여름엔 아이스 많이 먹을 수 있다고 좋아했던 것 같은데, 처음엔 네가 금세 질린 줄 알았어. 근데 그 해부터는 정말 꾸준히 싫어하더라. 좋아하는 건 쉽게 잃고, 시간은 지날수록 마땅찮은 것만 늘어가네.
물살이 반대로 파도치는 해변에 다리를 담그고 서 있는 꿈을 꿔. 그리고 이마에 똑같은 상처가 있는 두 구가 떠내려오면 아득한 망망대해로 보낼 수 없어 나는 안간힘을 줘 끄트머리를 잡아당기고…
세상 사람들이 다 나 같으면 어떠려나, 하다가도 말이야. 순간순간의 충동적인 선택 때문에 인생의 궤가 달라져 언젠가 나는 완전히 지금의 내가 아니게 된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 인간은 한 가지 개체의 팔십억 가지 표현일까, 팔십억 가지의 개체일까?
사실은 그날 나는 스스로를 정말 못 써먹겠다고 생각했어. 지키는 건 너희만 할 수 있는 일이고, 지키지 못한 자의 곁을 지키는 것까지 내가 해야 할 일이겠지. 절규할 시간조차 없이, 결국 사망선고를 내리는 건 다름 아닌 의사니까.
아이들은 너무나 빨리 성숙해져.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설명해 줄 어른이 없었기 때문에 선택한 건, 좁은 규정 안에서만 도는 부유물이 되는 것뿐. 그래서 중력과의 유리를 느꼈어. 그렇게 우리는 이 대지에 땅을 밟고 살아감을 잊은 거야.
사체 냄새는 익숙하다. 이 사실에 유감은 없다. 여름에도 문을 열기만 하면 다가오는 영안실의 한기 스민 공기도. 사람들은 왜 죽음에 원한을 갖고, 또 원한을 갖고 죽게 될까. 나의 무딤은 이걸 이해하지 못하는 자에게 내려지는 징벌 같을 뿐이지.
어디까지가 생生이고 어디까지가 사死일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라면 한 번쯤 이런 고민 해봐도 되잖아. 어디까지가 오차범위인지. 그는 양극단을 달리는 스펙트럼 중 어느 쪽에 일 밀리미터라도 가까운지. 이걸 정한다면 다음에 그를 만날 때의 방향도 정해지겠지.
혼란스러웠던 때를 기억한다. 그해 가을, 우리는 빈자리가 어색했고 애써 “우리” 대신 다른 것에 매몰되려 애썼다. 이를테면 미래지향적인 것들. 그 과정을 거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단계였지만, 그렇다고 너와 나와 그가 이전만큼 소중해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난 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고, 너는 내가 안중에 없었지. 그래서 더 교실 밖을 나돌았다. 그곳은 함께 있는 공간이었으니까. 단일로 존재할 수 있는 곳으로. 한동안 기숙사에서 최소한의 생활만 했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그러다 가끔 너를 만나면 네 선글라스를 벗겼다. 넌 그 눈으로 너무 많은 걸 목도했겠지만 가끔은 거기에 무얼 담을 건지 공연히 궁금했거든. 이제 걔는 없는지, 나도 없는지. 그리고 어느 날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시답잖은 네 투정을 다시 받아주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벌어진 일이 없던 일이 되는 건 천지가 뒤집혀도 일어나지 않겠지만, 나도 더는 누군가 혼자 남은 건 볼 수가 없어서. 너도, 그리고 나도.
어렸을 땐 어른이 되기 싫었거든. 학교란 울타리 안에서 집단적 방황과 고독에 안주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고, 뭐랄까. 될 수 없단 마음도 컸어서. 당장 오늘 죽어버리면 영영 어른은 못 되는 거니까. 될 수 없다면 차라리 꿈도 꾸지 않는 게 더 합리적이잖아? 그러니까 죽이는 것보다 살리는 게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그리고, 타인을 동기로 살생하는 것보다 가치판단 없이 공평하게 소생시키는 건 두려움의 대상을 소망하는 데에 쓸만한 연명장치가 되어 줬거든.
다시 돌아간다면 네게 인사하겠지? 그리고 너 자신을 더 소중히 하란 말도. 나는 널 그 정도는 좋아하니까. 하지만 그게 다야.
“뇌”. 어디까지가 뇌의 영역일까. 해파리는 뇌가 없는 것 알아? 간 이식 수혜자가 수여자의 기억 일부를 갖는 것도. 인류가 뇌에 대해 모르는 것만큼 뇌는 그렇게 대단한 부품이 아닐지도 몰라. 인격을 구성하는 건 뇌보다 자유의지의 파이가 크거든.
어떻게 타인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섣불리 위로하며 변화를 권유한 걸까, 너희는. 우리는 우리 모두에게 타인이다. 나는 가끔 너희의 그 오만함이 궁금했어.
장례라는 거 철저히 남은 이들을 위한 의식이거든. 부검도, 망자의 억울한 일을 풀어준다고 하지만, 그거보단 남은 이들이 의문 없는 이별을 준비하게 하는 행위에 가깝지. 혼도, 원도… 그러다 결국 인간에게서 주력이 나오면 주령이 되어버려. 조롱하는 것 같지 않아?
우리의 파편은 길목마다 남았는데 갈림길을 지나니 그 어떤 타인도 찾을 수가 없네.
얼마 전에, 예전에 쓰던 핸드폰 발견했어. 십이 년 전인가? 핸드폰 뚜껑 열던 시절 말이야. 지나가 버린 시대지. 거기 너희 사진이 있더라고.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기에 그냥 닫아서 다시 넣었어. 너넨 정말 쓰레기들이야.